2008년 05월 27일
[렛츠리뷰]GQ KOREA, 런던에서.
1. 우선,
(이글루스님께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저는 외국에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티븐 시걸도 이문열씨도 아닐 바에야 굳이 이글루스님께서 여기 영국까지 지큐를 보내 주실 리는 없잖아요; )
여기서 어떻게 구할까 하다가 결국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gq korea 5월호를 받았습니다. 역시 회사는 좋네요.
절대로 볼 일이 없겠지만 제이.리 에게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인증샷;; 입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사회 다방면에서 뻥을 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내친 김에 가지고 있던 gq uk와 같이 찍어 보았습니다. 판형에 약간의 차이가, 표지 모델에서는 굉장한 차이가 있네요.ㅋ
두께의 차이는 광고의 양과 지질의 차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2. 자, 리뷰 시작합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서인지 father to son이라는 표제를 냈네요. 뭐, (다양한 의미로)무난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칼럼 중의 하나인) 이충걸씨의 gq 칼럼 제목도 그래서인지 아버지입니다.

gq korea는 한국의 보통 사람을 프레임에 담는 걸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가업을 잇는 아버지와 아들들을 주제로 하는 화보(라고 해도 되나요?)가 실렸습니다.
양키들이 같잖은 소리 해둔 걸 번역하는 것 보다는 이게 더 좋아요, 저는.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화보입니다. 유기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소개했어요.
개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무서워합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좋은 기사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민'해요.ㅋ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는 곳이라면 그리 하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gq korea의 미덕이라면 지금의 한국/서울의 정체성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우철씨가 맡는 리빙 화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에요.
이번 달의 주제는 신혼입니다. '살다보니 옷벗기 바둑을 다 두고'에서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바둑 배울래.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에 가지는 관심도 위의 장점들과 연결되는 gq korea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바둑, 현대문학, 배구같은 나름의 비주류 문화에 관한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웠어요.


일견 도전적인 칼럼도 어김없이 있습니다. 허지웅씨가 떠난 마당에 이런 풍의 칼럼은 다시 신기주씨가 쓰시네요.
1)아이돌을 주체적으로 소비(한다고)하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와 2)블로거가 기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칼럼이 실렸습니다.
1)어떤 사회에 있는 어떤 세대의 명쾌한 입장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획도, 문답식의 형식도, 질문(과 그를 통해 유도될 답)도 새롭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2)같은 경우는 여기서야 당연히 굉장히 민감한 주제겠지요:) 확실히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웹에 글을 잘 안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어떤 나비가 되어 어떤 날개짓을 할 지 모르니까요)


표지모델인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이번 호의 크리틱에서 번역된 것이 없었습니다. 왠지 흐뭇하네요.
아, gq는 패션잡지입니다. 물론 스타일 화보도 많아요.
gq korea의 에디터들도 충분히 감각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 처럼요.


하지만 이번 호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breaking the
rules라는 제목의 외국 스타일 화보였어요. 제 취향입니다:)
오른쪽의 남자는 프렌치 커프스 셔츠에 빵 끈을 끼워서 고정시키네요.
결국은 내가 즐겁게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나 멋있)다, 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참 좋았습니다.
저야 이렇게 마음에 든 편이지만 모두가 제가 아닌 이상 누군가는 분명히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패션 화보는 너무 불친절하거나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비쌀 수 있고 누군가에게 크리틱들은 너무 불편하거나 너무 싱거울 수 있겠지요. 그래도 gq korea는 어떤 목표나 시각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이고, 적어도 이번 호 역시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3. 그리고 저는,
사실 모든 패션잡지는 스노비즘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지금의 한국, 서울은 뭘 해도 어느 정도는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큐 코리아는 그 모든 상황 위에서 슬픈 줄타기를 하고 있는 흥미로운 매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리뷰를 쓸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라는 (사실 좀) 부담스럽고 거창한 문장들로 이 잡지를 받았습니다. 이 말에 대한 해(변)명을 하고 싶어서요:)
사실 저 말 그대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gq korea를 포함한 모든 패션잡지는 소비를 위한 일종의 카탈로그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광고가 많다는 것에 대한 불평은 가끔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이번 달에 소개된 페라가모의 역사나 그 만듦새에 대한 '기사' 와 광고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즌'의 '잇 아이템' 은 당신을 '핫' 하게 만들어준다-는 주문을 금언처럼 반복하는 여성잡지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남성잡지 역시 사실 본질적인 성격은 비슷할 거에요.
gq korea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들은 그 사슬을 알고 있다, 혹은 그 사슬 위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충걸이라는 (gq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라면)'명민한' 편집장 덕분이겠죠. 올해 3월호의 편집장 칼럼을 보신다면 이해가 빠를 거에요. 퍼와도 되나 싶어서 첨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이 밀란이나 런던같은 패션 산업의 중추가 아니기 때문에, 아니면 한국이 일본처럼 현대 복식사에 남을 만한 어떤 움직임을 (적어도 아직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서울의 패션이나 트렌드라는 건 어떤 종류의 '따라함'으로 귀결되거나 오인받습니다. (제가 gq 코리아로부터 받은 건 가끔씩 주는 부록 뿐이지만) 저마저도 가끔은 패션 잡지들이 불쌍하다, 라고 생각하는 이유에요. 저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아시다시피 한국은 시장의 규모에 비해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꽤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소페와 입 생 로랑이 같이 나오고, 토미 힐피거와 디올 옴므가 한 벌을 이루는 나오는 이번 달의 화보는 좀 어색한 만큼 불가피하기도 하다고 봐요. 아쉽게도 한국 남성복 시장은 아직 그 정도 규모일 테니까요.
그래도 gq korea는 다른 패션잡지들에 비한다면 훨씬 예민하고 대담합니다. 빈센트 앤 코 시계 사건이 터졌을 때 지큐 코리아는 그 사람에게 당한 에디터의 수기를 실었고 이번 달에도(이미 6월호가 나왔지만 지금 리뷰하는 잡지가 5월이고, 그리고 아직 5월이니ㅋ 계속 이번 달이라 칭하겠습니다) '블로거는 기자일까' 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크리틱을 게재했습니다. 허지웅씨가 기자로 있었던 것 자체가(물론 매체와 허지웅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전혀 모릅니다만) 충분히 그걸 증명한다고 보구요. 그래봐야 '다 멋있는 척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음, 전 그냥 입을 닫겠습니다. 적어도 전 gq korea에게 선동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결국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속물성은 존재하는 겁니다. 결국 gq 한국판 역시 그에 적어도 일부분은 기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뭔가 만들어내지요. 계속 고민하면서요. 자신들이 찍어내는 글과 사진들이 뭔가 의미를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어떤 기능/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그게 제가 gq korea를 슬픈 줄타기를 하고 있는 흥미로운 매체라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읽으셨다면)
길고 장황한 리뷰(라고 할 수나 있을지;; )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시국이 하 수상한 이 때에 이런 리뷰를 쓰는 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만.
# by | 2008/05/27 21:55 | 책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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